보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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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보경사


보경사는 602년(신라 진평왕 24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지명법사가 603년(진평왕 25년)에 창건한천년고찰이다.


지명법사는 진나라(중국 낙양)에서 유학하면서 백마사 ¹ 에서 모셔온 8면경에 대한 이야기를 왕에게 자세히 고하고 큰 불사 원력을 밝혔다. 왕은 지명 법사 10만리 만경창파를 헤치고 보경을 모셔온 호법인연으로 대작불사 의지를 삼보전에 아뢰고 신하들을 대동해 해맞이(영일) 고을로 출발하였다. 일행이 명당을 찾고 있을 때 지명 법사가 하늘을 쳐다보니 5색구름이 있었는데 이 구름을 따라 동해안을 거슬러 내연산에 도착했다. 1만2천봉에 12폭포가 절정을 이루고 넓은 연못이 있었다. 일제히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8면 보경을 봉안한후 대가람을 완성했는데 이 절이 바로 보경사이다. ²

「보경사 금당탑기」에 보경사 창건연기설화


마등(摩騰) , 섭마등(攝摩騰) , 가섭마등(迦葉摩騰)과 법란(法蘭)이 제자인 일조(日照)스님에게 8면원경을 주며, "동국 조선의 해뜨는 지방에 있는 종남산 아래의 100척 깊이의 연못이 있는데 그곳이 동국 제일의 명당이다.
그 못을 메우고 보경을 묻고서 법당을 창건하면 만세 천추토록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그 가르침대로 한 까닭에 '보경금당(寶鏡金堂)'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³

「옥룡자산수비기」에 실려 있는 보경사 창건연기설화


진평왕 25년에 왕이 신하들과 지명법사를 거느리고 동해안을 순행(巡幸)하다가 해아현(海阿縣)에 이르러 산정에 오색구름이 덮여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산 아래 이르자 큰못이 있었다. 지명법사가 그 못이 불법이 불멸할 명당이라고 아뢰자 왕은 그못을 매우고 지명법사가 진 나라에서 구해온 팔면보경을 그 못 가운데에 묻고 금당을 세웠는데 이를 보경사라 이름하였다. 그 뒤 고려 고종 때 원진국사를 비롯하여 오암대사 등 많은 호국 승장과 고승들이 중창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일주문·해탈문·천왕문·산신각·명부전·팔상전·영산전·대적광전·대웅전이 있으며, 중요문화재로는 원진국사비, 원진국사부도, 동종, 괘불, 오층석탑등이 있다.

1.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해진 것은 인도 마등과 법란 두 스님에 의해서인데 그 스님들은 석가모니불상한구와 불경, 그리고 12면경과 8면경을 백마에 싣고 왔는데 중국에 도착한 백마는 임무를 다했다는 듯 목숨을 거두었다. 백마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중국 최초의 사찰

2. 중국 백마사와 보경사의 연기(문화콘텐츠닷컴, 한국콘텐츠진흥원) 인용

3. 내연산 보경사(포항문화원) 인용

4. 이종익, 「보경사의 사적과사화」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