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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와 있는 lh주택공사 물건이 전세 1건, 월세 1건뿐이다. 매매는 한 건도 없다. 이번 달까지 석 달 동안 한 건도 계약을 못 했다.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임차료와 전기료, 수도료, 정수기 임차료까지 꼬박꼬박 나가야 할 돈은 정해져 있다. 그동안 번 돈으로 버텨왔는데, 더는 못 버티겠다. 소상공인 대출을 받아야 올해를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내년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소액대출쉬운곳 지 걱정이 많다." 문 씨는 "세종시에는 신규 아파트 분양이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며 "거기에다 임대차 3법 시행 후 계약갱신권 행사가 많아 이사철이 돼도 전월세를 구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 내 생활비 정도만 벌자는 심정으로 지금껏 버티고 있다"며 "세종시에서 부동산중개업으로 생계를 꾸리려는 사람은 이미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나갔다"고 말했다. 문 씨 말마따나 세종시 건물 곳곳에는 '폐업'한 부동산중개업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새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분양'을 위해 부동산중개업소가 문을 열었다가 수분양자를 찾지 못해 폐업한 곳이 부지기수인 것이다. 나성동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유모 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세종시에서 부동산중개업으로 밥 먹고 살기 힘들다"며 "임차료 같은 고정비를 감당하려면 최소한 일주일에 한두 건 이상 계약을 성사시켜야 하는데, 여기서는 한 달에 한 건 계약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건물 관리를 하면서 부업으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어진동의 불 켜진 아파트와 불 꺼진 상가가 대조를 이룬다. 구자홍 기자 인구 대비 너무 많은 상가세종시가 부동산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은 과도한 상가 공급과 무관치 않다. 계획도시인 세종시는 초기 단계부터 주택 및 상가 공급을 일괄적으로 추진했다. 시내동의 경우 아파트 단지 앞에는 어김없이 상가가 조성돼 있다. 또한 시내를 관통하는 BRT 운행 도로를 따라 상가 건물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나성동·어진동·소담동 등 도심에는 별도로 중심 상업지구까지 대규모로 조성돼 있다. 아파트 단지 앞, BRT 도로변, 그리고 중심 상업지구까지 3중으로 상가 부지를 치밀하게 '계획'한 게 오히려 상가 공실률 상승의 주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건물의 일정 비율을 상가로 조성해야 하는 주상복합까지 대규모로 지어지면서 상가 공실률을 더 높였다. 황현목 소상공인연합회 세종연합회장은 "세종시에는 인구 대비 상가가 너무 많이 지어졌다"며 "건설 경기가 한창 좋을 때는 세종시에서 먹고 자는 인력이 많아 그런대로 지역 상권이 유지가 됐다. 그런데 계획된 아파트와 건물이 거의 다 지어져 건설 인력이 다 빠져나가고 인구 유입까지 줄어들면서 소비가 감소해 지역 상권이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종시는 창업하는 소상공인도 많지만, 업종전환도 많고, 폐업도 많은 3다(多) 도시"라며 "높은 임차료와 최저시급 등 고정비는 그대로인데, 매출이 늘지 않아 폐업하는 소상공인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던 분양가도 상가 공실률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서울 등에서 세종시로 이주해 온 공무원 주거를 위한 '특공(특별공급)'이 한창이던 2010년대 중반 아파트 분양가는 3.3㎡당 1000만 원대가 주를 이뤘다. 그런데 당시 건물 1층 상가의 경우 3.3㎡당 3000만 원 대에 분양됐다고 한다. 부동산중개업자 문모 씨는 "상가 1층은 대부분 18평 규모로 작게 나눠 분양됐는데, 분양가가 8억~9억대로 높게 책정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 임대료 200만~300만 원을 예상하고 5억~6억 원의 대출을 끼고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이 많았는데, 임대가 나가지 않아 대출이자를 감당하느라 어려움을 겪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상가 수분양자는 남은 대출금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상가를 넘긴 일도 있다"며 "최초 상가 분양 때 자기 돈 2억~3억 원을 투자하고 지금까지 낸 대출이자만도 1억 원이 훌쩍 넘을 텐데, 더는 대출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큰 손해를 감수하고 상가를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은퇴 후 '임대수입'으로 안정적 노후를 꿈꾸며 세종시에 상가를 분양받았다가 오히려 막대한 손실만 보고 판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분양받은 상가를 더는 놀릴 수 없어 임대료를 받지 않고 상가를 임대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별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불 꺼진 상가뿐 아니라 불 켜진 상가도 임대료를 제대로 받는 상가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료 없이 관리비만 내는 조건으로 상가를 임차하거나, 분양받은 사람이 상가를 놀릴 수 없어 직접 장사에 뛰어든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개업하면 주변 사람들이 찾아와 '개업발' 특수를 누리지만, 꾸준히 손님이 찾아오지 않으면 몇 달을 못 버티고 문 닫는다"고 말했다. 그는 길 건너 폐업한 한 음식점을 가리키며 "올해 개업한 집인데 연휴 전까지만 해도 점심시간에는 기다렸다 먹어야 할 정도로 손님이 꽤 있었다. 그런데 긴 추석연휴 지나고 나니 철거하더라"며 "저마다 겉보기와 다른 속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먹는 장사는 점심 장사로는 임차료와 재료비 같은 고정비를 감당하기 벅차다"며 "저녁 장사, 무엇보다 술장사가 돼야 인건비라도 건질 수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세종시는 아직 회식 문화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민들이 수변에 조성된 파크골프장에서 파크골프를 즐기고 있다. 구자홍 기자 생활은 세종, 소비는 대전?낮 시간대 세종시에서는 도심 대로변을 오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빈 상가가 들어선 곳은 한낮인데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대신 천변에 자리 잡은 파크골프장에는 홀마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파크골프를 즐기는 노년 시민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했다. 한 어르신은 세종 상권이 살아나지 않는 이유를 '대전행'에서 찾았다. "세종에 사는 젊은 사람 중에 살기는 여기 살아도 돈은 대전 가서 쓰는 이가 많다. 대전에서 쇼핑도 하고, 유성에 가서 술 마시고 대리운전으로 돌아온다." 공주에서 세종으로 이사 왔다는 한 시민은 상가 활성화를 가로막는 이유로 '불편한 주차'를 꼽았다. "차를 타고 가다 들어가고 싶은 가게를 발견해도 세종 시내에서는 가게 앞 도로에 차를 댈 수가 없다. 아파트까지 빙 돌아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잘 안 돼 그냥 돌아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별로 안 다니는 인도는 줄이고, 가게 앞에 차를 대고 볼일을 볼 수 있게 해주면 도로변 상가들이 지금보다는 장사가 잘될 텐데…." 세종 상권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시민들은 저마다 의견을 갖고 있었다. 창원과 울산 등 대규모 산업도시를 돌며 30년 넘게 건설업에 종사하다 세종시로 이주해 왔다는 한 시민은 "공무원들이 많이 사는 도시라 그런지 세종시는 참 조용한 도시"라며 "시끌벅적하게 먹고 마시고 떠드는 문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성동에 먹자골목이 일부 있는데, 그 정도로 지역 상권이 살아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창원 상남동처럼 세종시로 출장 온 사람들이 숙소를 잡아놓고 그 주변에서 저녁도 먹고 술도 한잔 할 수 있어야 상권이 살아나는데, 숙박시설이 마땅치 않다 보니 대전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잔다"고 말했다. 그는 "세종시 상권을 살리려면 현지인은 물론 외지인도 편하게 먹고 마시고 잠잘 수 있는 핵심 상업지구를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 삶의 만족도는 꾸준히 상승공실률이 높고 자영업자 폐업률도 전국 평균을 상회하고 있지만, 세종시민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해마다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종시가 지난해 8월 26일부터 9월 11일까지 표본 1800가구, 13세 이상 가구원 13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삶에 대한 만족도는 6.8점으로 2023년 6.7점보다 0.1점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족도가 가장 높은 복지서비스로는 임신·출산·육아 관련 서비스가 38.3%였고,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가 36.1%로 뒤를 이었다. 전반적인 사회 안전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1.9%가 '안전하다'고 답했다. 이는 2022년 63.6%에 비해 8.3%포인트 크게 증가한 수치다. 시민이 바라는 세종시 발전 방향으로는 '정치행정중심도시(행정수도)'가 54.1%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첨단스마트도시가 15.6%, 미래산업도시 8.7%, 교육혁신도시 8.6%순이었다. 세종시는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유형별·맞춤형 상권 육성과 소상공인 자금 지원 등 소상공인 지원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10월에는 나성동 '38포차 거리 행사'를 지원해 침체돼 있는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세종 밤마실 주간'을 4월·6월·9월·10월·12월 등 연 5회, 총 25일간 운영해 야간 문화 관광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특히 소상공인들의 경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자금 지원 대책도 마련했다. 10월부터 영세 소상공인의 고금리 부담 완화를 위해 소상공인 1명당 최대 2000만 원까지 융자를 지원하고 이자의 4%를 보전해 이자 상환 부담을 완화하는 '초저금리 특별자금'을 도입한다. 세종시가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여러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유동 인구뿐 아니라 정주 인구를 늘려야 하는데, 세종시는 출범 12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일각에선 '출퇴근 도시'로 여겨지고 있다. KTX, 또는 SRT로 서울 등 외지에서 출퇴근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고, 원룸을 얻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세종에 머물며 일하고, 금요일 저녁에 귀경하는 '주말족'도 여전히 적지 않다는 점에서다. 세종시 부동산중개업계에서는 "정부 청사와 가까운 어진동, 나성동 부동산중개업소만 호황을 누린다"는 얘기가 나온다. 원룸과 오피스텔이 밀집해 있어 평일에는 세종에, 주말에는 서울에서 생활하려는 이들의 전월세 수요가 많다는 점에서다. 세종시 관가에는 '천하 제일 세종 바보' 유머가 떠돈다. 서울과 과천에서 중앙부처와 유관 기관이 세종으로 이전했을 당시 세종시 아파트 특별공급(특공)에 당첨된 공직자가 서울 아파트를 팔고 세종시로 이주해 '벼락거지'가 된 경우를 뜻한다. 세종시 특공 아파트는 분양가 대비 2~3배 수준에 머문 반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10년 전에 비해 많게는 5배 가까이 급상승했다는 점에서다. 중앙부처 한 국장급 인사는 "세종시 특공에 당첨된 덕에 서울보다 넓은 새 아파트에 살게 된 것을 빼고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며 "특공에 떨어진 동기는 한동안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이 크게 오른 덕에 넉넉한 노후를 보장받게 됐다"고 씁쓸해했다. "대통령도 없는데 무슨 행정도시고!"세종시는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언제쯤 '살고 싶은 도시' '머물고 싶은 매력 도시'로 인정받게 될까. 현재와 같은 높은 상가 공실률과 자영업자 폐업률이 지속되는 한 쾌적한 겉모습과 달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남 창원 출신의 한 부동산중개인은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끼리 암만 뭐라 캐도 아무 소용 없다 아입니꺼. 서울에 있는 국회가 여기로 내려오고, 대통령꺼정 내려와야 세종시가 안 살아나겠능교. 대통령도 없는데 무슨 행정도시고."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수도권은 미어터져 죽게 생겼고 기업과 산업 정책도 마찬가지"라며 '대통령실 세종 이전 공약'을 밝힌 바 있다. 5월 31일 세종시 유세에서는 "헌법을 바꾸는 국민적 합의를 거쳐 대통령실도 옮겨오고 균형적인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대통령 취임 후인 7월 4일 대전에서 가진 '타운홀 미팅'에서 이 대통령은 "대통령실을 세종으로 옮겨달라"는 한 참석자의 요청에 "그건 제 소관이니 말씀드릴 수 있다. 최대한 한번 빨리 와보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대통령실의 세종 완전 이전은 헌법 개정 문제라 쉽지 않다"며 "오래된 약속이니 가급적 지키는 게 맞다. 저는 말한 건 지킨다"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대통령실 세종 이전'과 '국회 세종 이전'은 이재명 정부 내에서 현실화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북극항로' 개척을 지휘할 해양수산부와 유관 기관의 연내 부산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인구 40만 명 돌파 문턱에 서 있는 세종시는 해수부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인구 유입보다 유출될 공산이 크다. 정주 인구 감소는 자영업자 매출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세종시의 높은 상가 공실률과 폐업 자영업자 비율은 당분간 낮아지기 힘들어 보인다. 세종=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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