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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수행법-생활선 이해(조사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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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3-13 03:14 조회1,2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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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교육의 내용
 
(4) 생활선 이해(조사선) ③
 
17)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남악회양선사가 육조스님께 참례하러 왔을 때 육조스님이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는가?
숭산(崇山)에서 왔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什徼物恁徼來)?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곧 맞지 않습니다.
도리어 가히 닦고 증득할 수 있겠는가?
닦고 증득함(修證)이 없지는 않으나, 오염은 곧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이 오염되지 않는 것(不汚染)이 모든 부처님께서 호념하는 바이다. 네가 이미 이와 같고 나도 또한 이와 같다.
 
―《육조단경 六祖壇經》―
 
이 ‘오염되지 않는 것’은 너와 내가 이미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다. 오랜 동안의 수행을 거쳐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 학식을 통한 것은 더군다나 아니다. 일찍이 더러워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박에 깨닫는 것(頓悟)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마음 돌이켜 자신의 본성을 보는 것(見性)이다.
 
이처럼 자성을 단박에 깨쳐서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이미 갖추고 있는 불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불교 수행의 기본적 체계인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에 관한 견해도 기존의 틀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선 신수스님은 계․정․혜를 말하기를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을 계라고 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혜라고 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을 정이라고 한다. 이것이 곧 계․정․혜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그대로 전통적이고도 고전적인 해석이다. 어찌 보면 정통적인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혜능스님의 견해는 사뭇 다르다. 혜능 스님은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마음의 땅(心地)에 그릇됨이 없는 것이 자성(自性)의 계요, 마음의 땅에 어지러움이 없는 것이 자성의 정이요, 마음의 땅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자성의 혜이니라..
이처럼 혜능스님은 자성심지법문을 하고 계시다. 자기의 성품은 본래 그릇됨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다(自性은 無非․無亂․無痴). 이것은 평상심이 도(道)라는 표현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평상시의 우리의 마음은 무분별심이다. 그릇되거나 혼란스러움도 없으며 어리석지도 않다. 다만 눈에 부딪치고 귀에 들리는 경계에 휩쓸려 분별을 일으킬 따름이다. 이렇게 자기의 성품을 단박 닦을 것(頓修)을 권하고 있는데 혜능스님 법문의 큰 특징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위와 같이, 범상한 사람으로서는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이룩한 육조스님에 의해서 참선 대중화의 발단이 마련된 것이다. 참선은 이제 더 이상 특수한 사람들이 특별한 장소에서 정하여진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열린 참선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경우 필요로 하는 것은 다만 자성에 대한 확신이며, 닦는다는 것은 바로 그 자성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이토록 뛰어난 가르침을 베풀어 지금 이 시대에까지 참선이 전해 내려올 수 있도록 만든 분이 바로 육조 혜능스님인 것이다.
 
한편, 혜능스님의 법문을 기록한 《육조단경》의 <부촉유통분>에 의하면, 혜능스님은 자신이 멸도한 뒤 5-6년이 지나 마땅히 한 사람이 와서 자신의 머리를 가져가리라 예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우리나라 신라 땅의 삼법(三法)스님은 혜능대사의 높은 이름을 듣고 꼭 한 번 뵙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혜능스님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나는 후생으로 변방에 살고 있어서 당대의 진불(眞佛)을 친견치 못했다고 한탄했다. 그때 전북 익산군 미륵사의 규정(圭晶)스님이 중국에서 돌아와 혜능이 설한 《법보단경초본(法寶壇經抄本)》을 보여 주었다.

감격한 삼법스님은 공경스런 마음으로 향을 사루고 이를 독송했다. 그 가르침은 마치 혜능이 직접 삼법스님 자신에게 설하는 것과 같은 감동을 준다.

그리고 그 초본에 실린 혜능의 예언에 따라 중국으로 잠입하여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머리)을 신라로 모셔졌다. 그 정상이 바로 현재 지리산 쌍계사의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에 봉안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은 《해동고승전》의 저자인 각훈(覺訓)스님이 1103년에 썼다고 전해지는《선종육조혜능정상동래연기(禪宗六祖惠能頂相東來緣起)》에 전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면 육조스님의 정상이 쌍계사 금당에 모셔지게 된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정상탑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의 방광(放光)을 통해 상서로운 영험을 보여 준 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육신보살(肉身菩薩)이라고까지 일컬어졌던 육조스님의 신비스런 법력이 깃들인 신앙적 귀의처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참선의 정맥이 바로 이 땅, 지리산 쌍계사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육조스님의 정상(頂相)은 곧 참선의 정수․골수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발달된 참선이 이제 한국으로 이어져 자리잡고, 나아가 세계화되어 가는 추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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