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향기참선수행법
참선수행법

참선수행법-선의 어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3-13 03:23 조회1,477회 댓글0건

본문

선(禪)의 어원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 불교의 수행자들은 선의 수행을 통해 해탈의 길을 걸었습니다. 선의 어원은 고요한 사유, 종교적 명상, 직관(直觀)을 뜻하는 범어 디야나(dhyana)로서, 중국에서는 그 속어형 즈하나(jhana)에서 어미모음이 떨어진 즈한(jhan)을 음역(音譯)하여 선나(禪那)라 하였고 줄여서 선(禪)이라 하였습니다. 디야나는 원래 인도의 요가(yoga)에서 정신통일을 통해 마음을 제어하는 수행의 방법이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선정(禪定)이라 하여 부처님께서도 선정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다고 합니다. 정(定)은 마음의 고요함을 의미합니다. 범어 삼마디(samadhi)를 음역하여 삼매(三昧)라고도 합니다.
 
선의 세계를 간단하게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敎外別傳(교외별전) 不立文字(불립문자)
直指人心(직지인심) 見性成佛(견성성불)
 
경전 밖에 따로 전해지는 가르침이며,
문자에 의존하지 않으며,
바로 그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깨달음을 이룬다.
 
선문염송(禪門拈頌)에서는
 
세간사즉정 법안장지광영야
(世間事則正法眼藏之光影也)
 
울고 웃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곧 정법안장의 빛과 그림자이다.
 
그러나 선을 수행한다고 해서 경(經), 율(律), 론(論) 삼장 三藏)의 가르침을 무시해도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삼장의 가르침은 나침판과 같습니다.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과 옛 수행자들의 가르침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길을 나선 수행자가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길을 찾기 위해 참고하는 지도와 같으며, 나침반과 같습니다.
 
마조 도일(馬祖 道一)스님의 제자이신 대주 혜해(大珠 慧海)스님은 망념(妄念)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선(禪)이요, 앉아서 본성(本性)을 보는 것이 정(定)이라 하였습니다. 본성이란 무생심(無生心)이요, 정이란 경계를 대함에 무심(無心)하여 팔풍(八風)에 움직이지 아니함이라 하였습니다. 팔풍이란 이로움과 손실, 헐뜯음과 높이 기림, 칭찬과 비웃음, 괴로움과 즐거움을 말합니다.
 
참선 수행의 분류
 
참선 수행의 길에는 여러 분류가 있습니다. 먼저 닦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당나라의 규봉 종밀(圭峰 宗密, 780∼841)스님은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에서 5종선(五宗禪)을 설하고 있습니다.
 
①외도선(外道禪) : 외도들이 지옥에 가기를 두려워하여 천상에 가기 위해 닦는 선
②범부선(凡夫禪) : 건강이 좋아지고 머리가 좋아지며 모든 액난을 소멸하기 위하여 닦는 선
③소승선(小乘禪) : 무아(無我), 무상(無常)을 관하고 부정관(不淨觀)을 하며 세상을 멀리하며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고 고요한 것을 즐기기 위해 닦는 선
④대승선(大乘禪) : 아(我)와 법계(法界)의 공(空)을 관하고 중도(中道), 실상(實相), 진(眞)을 관하는 것
⑤최상승선(最上乘禪) : 부처님의 청정선(淸淨禪)을 가리키며 이것은 관(觀)하는 선이 아니라 그대로 깨닫는 선으로 존재를 깨닫고 마음을 깨닫고 그 깨달은 마음을 깨달아 어느 것에도 매달리지 않는 선
 
다음으로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①의리선(義理禪): 경전이나 선의 이론을 보고 터득하는 선, 색과 공이 다르지 않은 이치를 확실하게 깨달은 경지
②여래선(如來禪): 색도 없고 공도 없는 경지의 선, 산도 물도 보지 않고 높고 낮은 것도 보지 않는 경지
③조사선(祖師禪): 색도 없고 공도 없는 가운데서 묘하게 나타난 형상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선, 산이 높고 낮은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경지로 나누고 있으며,
 
또, 수행방법에 따라서
①간화선(看話禪); 송나라의 대혜 종고(大慧宗 , 1089∼1163) 선사가 제창한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선 수행법
②묵조선(默照禪); 송나라의 굉지 정각(宏智正覺,1091∼1157) 선사가 제창한 일체의 사량 분별을 끊고 묵묵히 좌선함으로써 심성(心性) 자체에 계합(契合)하여 영묘(英妙)한 작용을 갖추고자 하는 선 수행법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깨달음의 단계에 따라서 돈오(頓悟, 南宗禪;혜능의 제자들은 주로 소주와 광동성을 중심으로 남쪽지방에서 활동)와 점오(漸悟,北宗禪;신수의 제자들은 주로 장안과 하북성을 중심으로 북쪽지방에서 활동)로 나눕니다.
 
점오(漸悟)는 대통 신수(大通神秀;606∼706)선사의 제자들에 의해 주창되었으며, 점차로 닦아 수행의 계위(階位)를 거쳐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중국의 오조(五組) 홍인선사는 제자들에게 자성반야(自性般若)의 게송을 지어보이는 사람에게 보리 달마대사 이래로 전해지던 가사와 발우를 전하여 육조(六組)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제자들 가운데 가장 박학다문(博學多聞)하여 홍인선사의 후계자로 기대되던 신수선사가 게송을 지어 보였습니다.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 물사야진애(勿使惹塵埃)
 
몸은 곧 보리수
마음은 맑은 거울의 받침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
먼지가 앉는 일이 없게 하라.
 
돈오(頓悟)는 수행의 계위(階位)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심지(心地)를 증오(證俉)하는 것으로, 육조 혜능선사 계통의 선입니다. 문자를 읽을 수 없었던 혜능선사는 신수선사의 게송을 듣고서 이에 도반(道伴)의 도움을 받아서 게송을 받아 적게 하였습니다.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
불성상청정(佛性常淸淨) 하처유진애(何處有塵埃)
 
보리는 원래 나무가 없고
맑은 거울은 원래 받침이 없다.
불성은 항상 청정하거니
어디에 번뇌의 티끌이 묻으랴.
 
이 게송을 본 홍인선사는 그날 밤 혜능에게 심법을 전수하며, 멀리 남쪽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육조단경 반야품에서는 이르기를.
『나는 오조 홍인화상의 문하에서 한번 듣자 그 말 끝에 크게 깨쳐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느니라(頓見眞如本性).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법을 뒷 세상에 유행시켜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단박 깨쳐서 각기 스스로 마음을 보아 자기의 성품을 단박 깨치게 하는 것이다(頓悟菩提).』
고 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혜능선사의 돈오사상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오사상은 다시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로 나뉘어져 주장되고 있습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돈오를 하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는 주장이고, 돈오점수(頓悟漸修)는 돈오를 한 후에도 닦아나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선을 수행할 때는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 어느 때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참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앉아서 수행하는 좌선(坐禪)이 가장 쉽게 정(定)에 들 수 있기에 참선수행의 기초적인 방법입니다.
淸河(2010-08-18 13:36:44)
  
 

 
인도의 선(禪)의 기원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心)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語)이라고 합니다 교는 부처님께서 45년간 설법하신 가르침을 담고 있다면, 선은 부처님께서 제자 가섭(迦葉)에게 세 곳에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신(이심전심, 以心傳心)인 삼처전심(三處傳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삼처전심(三處傳心)이란
첫째는 염화미소(拈花微笑)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법을 설하시는데 범천이 꽃비를 내리어 공양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꽃 한 송이를 집어 들고 대중에게 보이시니 아무도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보이신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가섭이 빙긋이 웃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나의 정법안장 열반묘심(正法眼藏 涅槃妙心)을 가섭에게 전하노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坐)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다자탑 앞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가섭이 늦게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부처님의 자리를 나누어서 앉도록 하였습니다. 대중들은 그 뜻을 몰라 어리둥절하였습니다. 이 때 가섭은 그 뜻을 알았다고 합니다.
 
셋째는 곽시쌍부(槨示雙趺)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먼길을 갔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온 가섭이 부처님의 관을 세 바퀴 도니, 부처님께서는 관 밖으로 두발)을 내밀어 보였습니다. 이에 가섭이 절을 하니, 대중이 어리둥절했습니다. 이 때도 가섭은 그 뜻을 알았다고 합니다.
 
선은 인간에 관한 부처님의 통찰을 총괄하는 가르침으로 동아시아 불교의 대표적인 종파인 선종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선종은 경전의 주석적인 연구에 치중하는 교종과는 달리 경전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오직 마음의 깨달음을 중시하면서 선종의 독자적인 조직과 규칙을 확립하고 중국불교의 최대종파로 발전하게 됩니다.
 
중국의 선의 기원
 
선은 불교 발생지인 인도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져 오는 선은 중국화된 선불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중국에 선불교가 전해진 것은 남인도국 향지왕의 셋째아들로서 인도 제27대 조사인 반야다라의 법을 이은 인도 제28대 조사인 보리달마대사에 의해서입니다. 달마대사는 스승으로부터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중국에 전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527년경에 바다를 건너 중국 남부의 광주에 도착하였습니다. 달마대사는 오랫동안 불교에 많은 후원을 하여 왔던 불교신자인 양나라 국왕 무제의 초청을 받고 의미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짐은 즉위한 이래 수많은 절을 짓고 경전을 출판하였으며 교단을 후원하여 왔습니다.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無)"
"어찌 공덕이 없다고 하십니까?"
"그 공덕이란 인간과 천상의 속세에서나 필요한 덧없는 것이며, 그 과보 또한 조금씩 새어 나오는 옹달샘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림자가 실재(實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실체(實體)가 아니듯이, 공덕 역시 허상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참된 공덕이란 무엇입니까?"
"참된 공덕이란 청정한 지혜의 완성에 있습니다. 지혜는 형상을 초월한 것이며, 공적(空寂)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그대가 말하는 성스러운 진리의 제일 원칙입니까?"
"진리는 크고 텅 비어서 조금도 성스러울 것이 없습니다.(達摩廓然無聖 ,달마확연무성)."
"짐을 대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입니까?"
"모르겠습니다.(達摩不識,달마불식)."
 
양 무제와의 대화 이후 달마대사는 형상에 집착하는 양 무제를 뒤로 하고 갈대 한 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서(一葦渡江圖, 일위도강도) 하남성의 숭산(崇山) 소림굴(少林窟)에서 9년간 면벽(面壁)하여 수행하였습니다(達摩面壁圖,달마면벽도).
 
어느 날 신광이라는 스님이 달마대사께 찾아와 법을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달마대사는 응답이 없었습니다. 신광스님은 밤새도록 뜰에 서서 기다렸습니다. 아침이 되어 내다보니 밤새 내린 눈 속에 꽁꽁 얼어 서 있으므로 달마대사께서 물었습니다.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나를 찾아 왔는가?"
"법의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
"너의 믿음을 바치라."
신광스님은 지체없이 예리한 칼을 뽑아 왼팔을 잘라 버리니 땅에서 파초 잎이 솟아나 끊어진 팔을 바쳤습니다. 신광스님이 후에 혜가스님이 됩니다(慧可斷臂圖, 혜가단비도).
 
이후 신광스님은 달마대사께 법을 구했습니다.
"저는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 불안한 저에게 마음의 평안을 베풀어주소서"
"그대의 불안한 마음을 가져 오너라. 그러면 마음의 평안을 주겠다."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찾을 수 있다면 어찌 그것이 그대의 마음이겠는가. 나는 벌써 그대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었느니라."
신광스님은 이 말씀에 크게 깨달았다. 신광스님은 달마대사의 법을 이어서 중국 선종의 제2대 조사인 혜가조사가 되었습니다.
 
달마대사의 일화는 또 하나 있습니다. 달마대사를 시기하는 무리들이 달마대사를 해치기 위하여 음식에 독약을 넣었습니다. 여섯 번의 독살을 피한 후 일곱 번째는 인연을 따르기로 하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위나라의 송운이라는 사람이 인도에 사신으로 갔다 오는 도중에 파미르고원에서 달마대사를 만났습니다. 달마대사는 한쪽 신발을 주장자에 걸어 매고 인도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隻履西歸圖,척리서귀도).
 
"대사님, 어디를 가십니까?"
 
"나는 인도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대 나라의 왕이 이미 세상을 떠났구려."
 
송운이 귀국하여 보니 위나라 명제가 세상을 떠나고 효장제가 즉위해 있었습니다. 송운이 달마대사를 만난 이야기를 전하자 달마대사의 무덤을 열어보게 했습니다. 빈 관 속에는 신발 한 짝 만 남아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 선불교의 대표적인 화두인 시심마(是什摩, 이 뭣꼬) 화두는 중국의 육조 혜능(慧能) 대사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혜능대사가 대중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이름도 없고 앞뒤도 없다. 밝기로는 해보다 밝고 어둡기로는 칠흑보다 더하니 이것이 무엇인고?"
 
또한 무자(無字) 화두는 조주(趙州)선사(중국,778 - 897)로부터 유래되었는데,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느니라."
"있다면 어째서 가죽부대 속에 들어 있습니까?"
"그가 알면서도 짐짓 범했기 때문이니라."
 
다시 어떤 스님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無)."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 했는데, 개에게는 어째서 없다고 하십니까?"
"개에게는 업식(業識)이 있기 때문이니라."
 
달마대사(527년경 중국에 도착)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선종은
2조 혜가(慧可, ?-593)
3조 승찬(僧璨, ?-606)
4조 도신(道信, 580-651)
5조 홍인(弘忍, 601-674)
6조 혜능(慧能, 638-713)
으로 이어져 이후 5가7종(五家七宗)으로 펼쳐졌습니다.
 
5가7종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위앙종; 혜능 - 남악 회양(677-744) - 마조 도일(707-786) - 백장 회해(720-814)의 법을 이은 위산 영우(771-853)와 그의 제자 앙산 혜적(840-916)에 의해 성립되었습니다.
② 임제종(臨濟宗); 백장 회해 스님의 법을 이은 황벽 희운(?-850)의 법을 이은 임제 의현(?-867)에 의해 성립되었습니다.
③조동종(曹洞宗); 혜능 -청원 행사(?-740) -석두 회천(700-790) - 약산 유엄(751-834) - 운암 담성(782-841)의 법을 이은 동산 양기(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840-901)에 의해 성립되었습니다.
④ 운문종(雲門宗); 석두 희천 - 천황 도오(748-807) - 용담 숭신 (782-865) - 덕산 선감782-865) - 설봉 의존(822-908)의 법을 이은 운문 문언(?-949)에 의해 성립되었습니다.
⑤ 법안종(法眼宗); 설봉 의존 -현사사비(835-908) -나한 계침(?-928)의 법을 이은 법안 문익(885-958)에 의해 성립되었습니다.
 
위의 다섯 종파에 임제종에서 분파한 황룡파(황룡 혜남, 1001-1049)와 양기파(양기 방회,996-1049)를 합하여 5가7종(五家七宗)이라 합니다.
 
우리나라의 선불교의 기원
 
우리나라의 선불교는 중국에서 전해졌지만 오히려 중국을 능가하는 수행정진을 하여 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선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진 것은 신라 28대 진덕왕 4년(650)에 법랑 선사가 당나라에 들어가 중국 선종의 4조 도신 대사의 법을 이어 온 것으로 시작됩니다. 법랑 선사의 법은 신행-준범-혜은-지선으로 이어져서 이후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봉암사 희양산문(曦陽山門)을 열게 됩니다. 그러나, 신행 선사는 법랑의 제자이면서 북종선의 신수의 법을 이은 보적 선사(651-739)의 제자인 지공 선사의 법을 이어 지리산 단속사에서 수행하였으나 산문(山門)을 형성하지는 못했습니다.
 
구산선문이 형성된 것은 783년에 당나라에 가서 마조 선사의 제자인 서당 지장의 법을 이은 도의 선사(?-825)가 보림사에서 가지산문을 열고부터 시작됩니다.
 
구산선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가지산문(迦智山門);전남 장흥 보림사, 도의(道義, ?-825)
②실상산문(實相山門);전북 남원 실상사, 홍척(洪陟, ?-828)
③동리산문(桐裏山門);전남 곡성 태안사, 혜철(惠哲,785-861)
④희양산문(曦陽山門);경북 문경 봉암사, 지선(智詵,824-882)
⑤봉림산문(鳳林山門);경남 창원 봉림사址, 현욱(玄昱,787-868)
⑥성주산문(聖住山門);충남 보령 성주사址, 무염(無染,800-858)
⑦사굴산문(師堀山門);강원 강릉 굴산사址, 범일(梵日,810-889)
⑧사자산문(師子山門);강월 영월 법흥사, 도윤(道允,798-868)
⑨수미산문(須彌山門);황해 해주 광조사址, 이엄(利嚴,870-93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