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히스토리텔링]내연산·보경사 등 - 매일신문(2015.11.23) > 언론에 비친 보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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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히스토리텔링]내연산·보경사 등 - 매일신문(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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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5-12-02 11:39 조회3,4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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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현감 겸재 정선, 내연산 폭포 그리며 진경산수 화풍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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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연산 연산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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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연산 관음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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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어지와 오어지에 설치된 원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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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경사 경내
 

내연산 보경사와 운제산 오어사는 포항을 대표하는 명산, 명 사찰이다. 산은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사찰 역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내연산과 12폭포

아름다운 사찰 보경사를 품고 있는 내연산(710m)은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에 자리 잡은 산으로, 빼어난 풍광으로 인해 예로부터 명승지로 소문이 난 곳이다.

내연산은 평일과 주말 구분없이 등산객들이 즐겨 오르는 산이다. 개성이 넘치는 12폭포와 천혜의 절경 기암괴석이 내연산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옛 문헌에 의하면 내연산은 원래 종남산(終南山)이라고 불렀다. 신라 진평왕이 이곳으로 견훤의 난리를 피한 이후 내연산(內延山)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진평왕과 견훤은 같은 시대 사람이 아니어서 신빙성이 없다.

내연산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배경에는 바로 폭포가 있기 때문이다.

보경사에서 위쪽으로 약 2㎞ 계곡까지 12개의 폭포가 연이어져 있다. 폭포수의 높이는 각각 5~30m에 이른다. 절에서 1.5㎞ 떨어진 지점에 있는 제1폭포인 쌍생(상생) 폭포를 비롯해 삼보`보연`잠용`무풍`관음`연산`은`시명 등의 제9폭포까지 있으며, 제10~12폭포는 제1~3복호 폭포라고도 한다.

제10폭포부터는 제9폭포에서 1㎞ 상류 쪽으로 더 올라간 지점에 있다. 주변 풍광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계곡의 기암절벽을 따라 12개의 폭포에서 동시에 떨어지는 웅장한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며, 떨어지는 폭포 소리는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신선이 살았다면 바로 이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특히 내연산 폭포를 명승지로 전국에 알린 것은 유명인들의 글과 그림이 큰 역할을 했다. 조선 중엽의 성리학자인 우담 정시한(1625~1707)이 1686년부터 1688년에 전국의 산천을 유람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일기인 ‘산중일기’에 내연산 탐승 기록이 나오는데, 이 글에서 그는 내연산 폭포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했다.

이와 함께 그림으로 내연산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한 사람은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 정선이다. 정선은 내연산의 비경을 가장 잘 묘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겸재 정선의 내연산

정선은 58세 때인 영조 9년(1733년) 이른 봄부터 1735년 5월까지 2년 남짓 청하현감을 지냈다. 지금의 송라는 당시에 청하현에 속해 있었다.

재임 기간 그는 '내연삼용추도(內延三龍湫圖), 내연산폭포도(內延山瀑布圖), 고사의송관란도(高士倚松觀瀾圖)’ 등 내연산 폭포를 소재로 5점의 그림을 그렸다.

전국의 명승을 찾아다니며 화폭에 담았던 정선이 내연산 폭포를 직접 답사하고, 이를 소재로 몇 점의 그림을 남김으로써 내연산 폭포는 비로소 전국적 명승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청하에서 겸재는 화업에 열중했다. 외직으로 나오게 되면 그리운 사람들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도 있지만, 그 적적한 생활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위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절호의 계기를 잡은 것이다. 겸재는 바로 청하현감시절에 ‘내연삼용추’ ‘금강전도’ 같은 명작을 그리며 사실상 겸재의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했다. 특히 이 그림들은 조선시대 회화로는 보기 드문 대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연산은 겸재의 화력에서 기념비적인 이정표가 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겸재는 재임 중인 1733년 ‘교남명승첩’(嶠南名勝帖) 상`하권을 냈다. 여기에는 내연삼용추를 비롯해 청하 지역은 물론 문경, 안동 등 58개 지역의 명승고적을 담은 주옥같은 작품들이 수록돼 있다.

겸재는 현감으로 재직하는 동안 ‘청하성읍도’ ‘내연삼용추도1, 2’ '내연산폭포' '고사의송관란도' 등 청하의 명승을 소재로 5점 정도의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선은 금강산과 영남지방 및 서울 근교 일대를 다니면서 산천의 특색을 남종화법을 토대로 표현, 새로운 화격을 이룩함으로써 전통 실경산수화의 면모를 일신하고, 진경산수화풍의 정형을 수립했다. 그의 진경화풍은 기존화법과 남종화법을 우리 산천의 형상에 어울리는 필법으로 소화해낸 것으로, 실경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회화적 재구성을 통해 경관에서 받은 정취를 감동적으로 구현했다는 데 큰 특색이 있다.

보경사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널리 알리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매년 가을 진경산수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송라면사무소 신대섭 담당은 “진경산수 화풍 발현 지인 내연산과 천년고찰 보경사의 문화적인 요소와 연계해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의 예술성과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이를 관광자원화 하기 위해 2016년까지 진경산수발현지 조성사업(탐방로, 전망대, 포토존, 쉼터 등)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경사

내연산에 살포시 자리 잡은 보경사(寶鏡寺)는 신라 진평왕 25년(603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大德) 지명법사(智明法師)가 창건한 고찰이다.

보경사에 따르면 지명법사는 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진나라에서 유학할 때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외국의 침입을 막고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하리라”고 했다.

이에 왕이 크게 기뻐하며, 그와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海阿縣) 증남산 아래 있는 큰 못 속에 팔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을 건립한 뒤 이를 보경사라고 했다. 그 뒤 고려 고종 때 원진국사를 비롯해 많은 고승들이 중창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전한다.

보경사 경내에는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와 부도(보물 제430호), 서운암동종(보물 제11-1호), 괘불탱(보물 제1609호) 등의 보물과 조선시대 숙종이 내연산 12폭포를 유람하고 그 풍경의 아름다움에 시를 지어 남겼다는 어필 각판이 있다.

보경사는 경북 3경의 하나로 일컫는 빼어난 주위 경관을 지니고 있으며, 사찰 주위는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있어 한 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을 정도다.

보경사는 특정 계절과 상관없이 사시사철 아름다움이 뚝뚝 묻어나 남녀노소 구분없이 즐겨 찾는 사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보경사 입구에 줄지어 있는 향토 음식점은 내연산 등산과 보경사 탐방을 마치고 돌아올 때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맛집으로 이름나 있다. 칼국수와 손두부 한 모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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